2008년 10월 26일
교수님께 보고서 제출할 때~
유인물은 따로따로 편집하더라두
교수님께 제출할 껀 함께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 ?
아직 발표 준비 다 못 했는데........언제할지 막막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 by | 2008/10/26 00:11 | 우리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 by | 2008/10/26 00:11 | 우리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7주차 인상비평 (해방기 문학) 인문학부 0610290 홍자연
오장환 <병든 서울>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문제가 되었던 그 “삼백예순날”이 여기서도 나왔다! 가만히 읽어보니 ‘일 년 내내’ 라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 김영랑도, 오장환도 일 년 내내 섭섭해 울고 몸부림치면서 운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시간에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일본식민지 적 역사에 대해 배울 때는 머리로만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인지 마음이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두 편의 시들을 다시 한 번 조용히 읽고 나니 그 시대의 참상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해방이 되었지만 또다시 반항을 다짐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박목월 <나그네>
이 시를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붉은 노을과 술이 익어가는 냄새, 시골길과 함께 나그네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비슷한 시대의 시인데도 병든 서울과는 뭐 다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르다. 성향을 따지자면 나는 박목월 쪽이 아닌가 싶다. 이 시대에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난 아마 시끄러운 사상 같은 것들을 떠나서 홀로 유유자적한 삶을 택할 것 같다.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더 좋겠고) 병든 서울의 화자의 열정적이고 젊은 화산 같은 삶도 조금은 부럽긴 하지만 말이다. 참 그리고 박목월이라는 이름과 그의 시는 정말 잘 어울린다.
이태준 <해방전후>
패강랭의 현이 변했다......는 조금의 배신감이 들었다고 하면 너무 야박한걸까? 조금도 굽힐 것 같지 않은 그의 모습이 참 멋있었는데. 어쨌거나 그는 결국은 자신이 꿈꿨던 지식인의 모습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고뇌가 아니었을까 싶다. ‘살아 견디어 내야만 했던’ 시대가 슬프다. 소설을 읽으며 복잡한 이념 없이 내 꿈을 열심히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역마 <김동리>
이 소설의 제목은 워낙 이곳저곳 다니는 걸 좋아하고 적응은 물론이며 돌아와서는 그 흔한 여독 한번 없는 나에게 우리 엄마도 자주 하시는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가 비슷해서 그런가보다. 그런데 ‘한줌이나 될 듯한 가느다란 허리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하여 발달된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두 손등’...... 옥화도 하체비만인가보다. 내 얘기 같아서 슬펐다.
염상섭 <이합>,<재회>
1940년대 문학에서 남녀평등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다니. 하긴 조선시대도 아닌데 그래도 뭔가 새로웠다. 보통 남편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아내는 집에서 걱정하며 기다리는 내용이 대다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도 싸워서 나중에 아내가 돌아왔을 때 장한이가 비꼬는 말을 할 때는 아내가 또 나가 버릴까봐 내가 다 조바심이 났다. 이 소설은 시대상도 생각해 보게 했지만 여성의 사회생활과 육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 by | 2008/10/18 22:29 | 인상비평 | 트랙백 | 덧글(1)
6주차 인상비평 (1930년대 문학) 인문학부 0610290 홍자연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조금은 우울한 카프시대의 작품을 보다가 김영랑의 시를 읽으니 조금 슬픈 내용의 시이긴 하지만 뭔가 여리고 감성적인 면이 느껴지는 듯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어디서 많이 봤던 시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 마지막에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역설법의 대표적인 예로 중학교 때부터 수도 없이 보아왔던 부분인 것이다. 그땐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역설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를 다시 읽으니 내 인생에서의 모란은 무엇일까 하는 진지한 생각이 들었다. 난 무엇을 기다리며, 혹은 소망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이상 <오감도>
이 시를 읽다보니 내가 다 무서워졌다. 이름처럼 시도 이상하다. 이런 게 15호까지 있다니. 나머지 작품은 어떨지 하도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2호랑 3호는 더 가관이다. 당최 시 읽다가 토할 것 같았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무질서해보이고 혼돈스러워 보이는 그의 시 안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이상이란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시대가 감당하지 못했던 시인”이라고 정의 내렸다.
서정주 <자화상>
난 함축한 뜻을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 입맛에 맞는 물을 마시듯이 쉽게 읽혀지는 수필 같은 시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화상>의 문체라든지 표현기법은 시를 쓸 때 조금은 모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 시에서 화자의 고통스럽지만 당당한 삶의 태도가 좋다. 스물세 해 동안 화자를 키운 건 팔할 바람이라고 하는데 스물두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현대에 사는 난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라서 이 작품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사치인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는 괴로움 속에서도 이렇게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화자와는 달리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나의 의지는 왜 이렇게도 연약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태원 <방란장 주인>
읽다가 숨이 넘어갈 뻔 했다. 나도 언젠가 한번 긴 한 문장을 써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는데 작가의 인내심이 느껴졌다. 박태원이 이미 한 문장짜리 소설을 완성했으니 언젠가 나는 영어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내용상으로는 다 읽고 뭘 느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던 소설이긴 하지만 특이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채만식 <치숙>
정말 잘 쓴 소설인 것 같다. 이중풍자를 이렇게 맛깔나게 하다니. 처음에는 주인공의 입담이 재밌기만 했는데 읽다보니 이게 한국 놈 맞나 싶었다. 아저씨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속 시원하게 소년의 말을 반박하지도 못하고. 차라리 ‘이 자식이’ 하면서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편이 날 뻔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생각도 주인공의 생각은 모자라기 짝이 없고 아저씨의 생각은 이상적이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 by | 2008/10/18 22:27 | 인상비평 | 트랙백 | 덧글(1)
5주차 인상비평
인문학부 0610290 홍자연
임화 <우리 옵바와 화로>
이 시를 읽는 동안 자꾸 박명수가 ‘안녕하셨쎄요’ 말투로 읽어주는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진지해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늘밤을 세어 이만장을 부치면 사흘뒤엔 새솜옷이 옵바의 떨니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편지를 이만장을 썼을리는 없고 해서 찾아봤더니 백장에 일전짜리 편지봉투를 만드는 것이었다. 시를 제대로 차근차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엄마가 집에 안계시면 밥 차리는 것도 귀찮아서 굶어버리는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이 시에 등장하는 여자아이는 참 씩씩하고 기특하다. 이런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계를 위해 단순노동을 해야만 했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박세영 <산제비>
문득 Alan Parker감독의 영화 ‘Birdy'가 떠오르는 시였다. 이 영화에서는 새처럼 날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만약에 안보셨다면 꼭 추천해 드리고 싶은 영화!) 1936년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정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누구나 한번쯤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 시대가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식민지 상황 속에서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만큼 자유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영희 <사냥개>
있는 것들이 더하다더니 어차피 죽어서는 가져가지도 못할 돈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물어뜯어 죽이는 개도 개지만 세상에 자기 돈 지키게 하려고 사들인 개한테 주는 밥도 아까워하다니. 정호의 죽음을 잘 죽었다고 말하기는 좀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쌍하지도 않은 걸 보니 당시 돈 없고 핍박당하는 사람들의 설움이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느껴지는 허무함을 동반한 황당함은 어쩔 수가 없다. 내용에 개연성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특히 ‘개의 자취를 또다시 볼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왠지 피식 웃음이 났다. 개는 어디 갔을까.
한설야 <과도기>
내가 살았던 작지만 정 많았던 동네도 지금은 재건축을 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깨끗하게 변했다. 어느 날 그 곳을 지나가는데 내가 딛고 서있는 넓은 지하주차장에서 어렸을 때 물장난 하고 놀았던 수돗가의 정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문득 눈물이 나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던 고향이 죄 쇠냄새 나는 공장으로 변해있었으니 얼마나 허무했을까. 읽는 나도 낯선 느낌이 들었으니. 소설에서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늘 속고 사는 것 같다. 서글프고 아팠던 소설이었다.
# by | 2008/10/18 22:26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1)
1. <우리 옵바와 화로>, 임화
이 작품은 어린 소녀가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컨셉 때문인지 그 어투 또한 귀엽고 깜찍하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귀여운 어투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전투적인 내용 때문에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어린 소녀가 쓴 글이 아니라 세상 물정 다 알고 거기에 비판까지 할 줄 아는 지식인이 쓴 글이라는 것이 단박에 눈에 띄기도 한다. 아마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유연한 방법을 사용하여 친근하게 전달하고 싶어 했나 보다.
2. <산제비>, 박세영
새라는 동물에 부러움을 느끼는 시와 노래들은 언제인지 모르는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진부한 소재이다. 새보다는 산제비라는 더 구체적인 대상을 놓고 만들어진 이 시는 그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정말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다시 한번 나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도 그런 것이 이 시의 화자는 어떤 종교의 열렬한 신봉자인양 산제비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이렇게 열심히 찬양하니까 이것이 진짜 좋아서 그러는 것도 같고, 비꼬려고 그러는 것도 같고 헷갈렸다.
3. <사냥개>, 박영희
전체적으로 다른 작품들보다 빠르게 읽혀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술술 읽은 것만도 아니다. 사냥개가 제목으로도 쓰일 만큼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겠다는 생각에 과연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계속 추측해보느라 머리가 아팠다. 자신의 재산을 잃을까봐 절절매는 부자와 그 부자에게 팔려와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다가 결국 주인을 죽인 사냥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두 주인공의 관계만으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는 신기한 소설이다.
4. <과도기>, 한설야
노동자들, 철도길, 없어진 고향, 갈데없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황석영의 작품인 <삼포 가는 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들었던 느낌은 추움이다. 가뜩이나 요새 들어 갑자기 쌀쌀해졌는데 소설 속에서 자꾸 춥다, 누가 죽었다, 없어졌다 하니까 괜히 우울해지고 한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또 정신적으로 의지해왔던 고향이 없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봤다. 평소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무슨 일인지 갑자기 나를 모른 척 할 때의 그 서늘한 느낌? 잘은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이 날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처음에는 별 어려움 없이 빨리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는 읽기가 힘들었다. 마치 이르는 듯, 고발하는 듯 너무 직설적으로 당시의 상황이나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기 때문에 소설보다는 실태 조사서를 읽는 듯 했다.
# by | 2008/10/13 03:17 | 인상비평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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